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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활동 및 연구성과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Institute of African Studies, 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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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포럼 라몰라 외교장관의 2026년 연설에 드러난 남아공의 가치 주도 현실주의(Value-driven realism)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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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27회 작성일 26-01-2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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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은경 교수


 남아프리카공화국 외교장관 로날드 라몰라(Ronald Lamola)202619일 외교정책 연설에서 남아공이 국제법과 다자주의 중심의 국제질서 수호에 역점을 두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넬슨 만델라의 말을 인용해 국제사회가 인권에 대한 약속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강대국의 일방적 군사행동이 유엔 헌장의 근간을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이는 최근 미국을 비롯한 주요 강대국들이 자국 이익을 앞세워 무력과 제재를 가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읽힌다. 특히 라몰라는 힘이 곧 옳음(might is right)”이라는 논리에 기댄 현실주의적 접근이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국제정세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며, 평화·대화·국제법 준수를 통한 글로벌 안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또한, G20 정상회의에서 남아공이 주장했던 글로벌 불평등과 개발도상국의 부채 부담,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과 피해의 불균형을 다시 한 번 지적하며 국제금융과 기후금융 구조의 개편을 촉구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BRICS+ 협력과 유엔 개혁 논의에서 남반구 국가들이 공유해 온 요구와 맞물려 있으며, 다자주의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게 불안정한 국제환경 속에서 공동의 발언권과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남아공의 외교 노선은 현 정부의 즉흥적 선택이 아니라 남아공의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구조적 산물이다. 남아공은 식민지배와 아파르트헤이트를 거치며 국제적 고립과 연대의 힘을 동시에 경험한 국가다. 민주화 이후 남아공 외교는 반식민·반제국주의 전통, 해방운동 외교, 글로벌 사우스 연대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형성돼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20255월 개최된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에서 나타난 인식 차이나 G20 정상회의에서 불평등·부채·기후금융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점은 일관된 외교 노선의 연장선으로 이해된다. 강대국 중심의 의제 설정과 일방적 압박을 경험해 온 남아공에게 국제법과 다자주의를 강조하는 다소 이념적인 선택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또한, 라몰라의 연설은 현 세계정세에 대한 중견국의 현실적 문제인식을 반영한다. 미중 전략 경쟁, 우크라이나와 중동을 둘러싼 분쟁, 제재와 보복 등이 일상이 되면서 국제질서를 떠받쳐 온 규칙의 효력은 빠르게 무력화되고 있다. 남아공은 이러한 환경에서 어느 한 강대국의 편에 서기보다 국제법과 다자주의라는 질서 그 자체를 방어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또한 도덕적 선택이라기보다 강대국 경쟁 속에서 자국의 자율성과 협상력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국익 추구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외교는 강대국·중견국·개도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와 실용주의를 중심으로 전개해 왔으며, 이념이나 가치 담론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국익과 성과를 중시해 왔다. 이러한 접근은 유연성을 제공해 왔지만, 식민지 경험, 전쟁, 개발이라는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사우스가 공유하는 규범적 문제의식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도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라몰라의 연설에 드러난 남아공의 가치 주도 현실주의 외교는 한국이 아프리카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을 심화하는 데 중요한 참고점이 된다. 한국의 대아프리카 외교 역시 아프리카 국가들, 적어도 남아공에게는 다자주의와 국제법이 이념을 넘어 국익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이를 반영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참고 자료:
Keynote Address by Minister Ronald O Lamola on the 2026 Foreign Policy Outlook: Advancing People-Centred Development (Working Brunch), Rustenburg, North West, South Africa, 9 January 2026

https://dirco.gov.za/keynote-address-by-minister-ronald-o-lamola-on-the-2026-foreign-policy-outlook-advancing-people-centred-development-working-brunch-rustenburg-north-west-south-africa-9-january-2026/